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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전기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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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이야기 ― 무안한 대학자랑의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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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일
2022/10/0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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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고 한 달 만에 사람들을 만날 때 학교 얘기를 안 하게 됐다. 대학생 1학년에게 가장 관심있는 이야기가 학교생활 말고 뭐가 더 있겠냐마는 처음보는 사람한테는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서울대에 다닌다는 얘기를 꺼내면 한 동안은 서울대에 대한 온갖 질문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 년에 3천 명이 넘는 학생이 입학(학부생만 쳐도)하고 지금까지 졸업한 학생이 수십만 명은 되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서울대생은 저렇구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도 2~3년 학교를 다니다 보니 다 사라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많이 줄었고, 대학을 물어보는 사람도 많이 줄었고, 나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대학을 물어보는 사람도, 대학 얘기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그래도 학생일 때는 “뭐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학생”이라고 대답하면, 학교나 전공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졸업생한테 구태여 출신 학교를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든 생각들이 많은데, 그 동안 가까운 사람 외에는 얘기했던 적이 없다. 이제는 심적으로 좀 자유로워져서 인지, 학교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은 풀어보려고 한다.

대학자랑 잘 하다가 제 대학은 왜 물어보세요…

꽤 자주 있었던 일인데, 1~2학년 때 모임에 나가면 고등학교 성적과 대학교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는 외부활동을 워낙 많이 했었기에, 처음 보는 다른 학교 학생들을 보는 일이 많았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면, 뒤풀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몇 명이서 따로 만나기도 한다. 학교 외부 모임은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도 다들 달라서, 서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활동이 서로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학교 얘기를 별로 안 하는 나같은 사람이 다니는 대학은, 가까워진 한두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이때 서로 인적사항(?)을 물어보다가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경험을 안겨준 사람들 중 이화여대 학생은 없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학 서열화 기준에 따르면, 이화여대 수준의 명문대를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이화여대 사진은 그냥 예뻐서…
본인이 OO대학을 다니고,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상위권일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 수능을 얼마나 잘 봤는지, 내신과 수능 등급은 얼마인지 등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입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어떤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며, 본인이 다니는 대학 자랑을 한다. 모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자랑을 맞장구 치고 들어준다. 얘기를 하는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간 것이 자랑스러울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저 정도 자랑은 해도 되고, 공부를 잘 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아량을 지녔기에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보통 모임의 대화를 주도한다. 나도 적당히 맞장구 치면서 잘 들어줬다.
문제는 나에게 질문을 할 때다. 아마도, 그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왔을 법한 사람들이 어떤 대학을 다니는지 파악이 끝났던 것 같다. 이번 모임이던, 아니면 활동을 하면서 따로 물어봤던 말이다. 그 사람은 주도적으로 몇 명의 대학을 물어봤는데, 질문의 대상은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모르는 사람 중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으로부터 학교에 대한 질문이 향하지 않은 사람은 좋은 대학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거나, 이미 어느 학교 출신인지 알고 있거나 지 않을까? 그 사람이 아마 나에게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빨리 물어봤다면 좋았을 것을.
그 사람의 자랑을 잔뜩 듣다가, 갑자기 “그런데 OO은 어느 대학 다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내가 낙성대(부끄럽지만, 서울에 사는 나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존재 자체를 몰랐다. 의외로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라고 대답하면, “아 그렇구나, 낙성대는 어디에 있는 대학이에요?”라는 질문이 온다. 지하철역을 보여주면서 “여기 낙성대역에 있는 대학이에요.”라고 대답하면, 학교에 대한 질문은 그것으로 끝난다. 아마 그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이니, 안심했겠지. 이제 다시 그 사람이 주도하는 자기 자랑의 장으로 빠져들면 된다. 하지만, 낙성대라는 대답은 한두 번 밖에 해본적이 없다. 나중에 만나면 곤란해지기에…
대부분은 그냥 “서울대 다녀요.”라고 한다. 그러면, 보통은 “서울에 있는 무슨 대학이에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서울에 있는 서울대요.”라고 답한다. 가끔 한 번 더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그 사람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어서 당황스러웠겠지. 그러면, 자기가 그 동안 자랑한 게 무안했는지 학교에 대해 몇 번 물어보고, 더 이상 그 사람의 자랑은 듣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자랑이 사라진 그날 모임은 아주 잘 끝난다. 그 사람과 나는 좀 서먹해지지만.
위처럼 학교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서울대 다니면서, 서울대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입학생과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데, 서울대생 만의 특징이 있겠냐고 계속 얘기했었다. 내가 곤란해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끝끝내 사소한 거라도 하나만 얘기해보라는 말에, 이대로는 안 끝나겠다 싶어서 대답했다. 결과는, 질문했던 사람이 화를 내서 그 모임은 그대로 폭파.
앞으로 기억이 나는 한 다양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시간이 오래돼서 잘못된 기억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조금 섞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서울대생이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나 서울대생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이 있었다면, 이런 글로 서울대생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이 조금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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